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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성평등 모델 10주년, 파리와 암스테르담을 방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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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댓글 0건 조회 320회 작성일 26-05-28 11:04

프랑스 성평등 모델 10주년을 맞이하여 파리에서 국제 심포지엄과 대행진이 열렸고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 4월 9일부터 17일까지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에서 간 출장길에 함께 했다. 


■ 프랑스 

- 프랑스 성평등 모델 10년 대행진

4월 12일, 프랑스 성평등모델 10년 대행진을 위해 각국에서 프랑스로 모였다. 

프랑스 성평등 모델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발걸음은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약 14개국에서 40명의 성매매경험당사자 그리고 반성매매활동가들  500명이 모인 열기 가득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준비해 간 깃발을 하늘 높이 들고 팡테웅 광장에 섰다. 

생존자 행진, 폭력 피해 생존자를 드러낸 행진에 참여한것은 처음이었다. 

누군가 사진을 찍진 않을까, 여기 서있는 날 비난하진 않을까 날이 서 있으면서도 

그저 그 순간에 함께한다는 것에 감사하며 모두와 따듯한 눈빛을 나눌 수 있었다.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의 발언이 시작되고 광장은 이내 조용해졌다. 

조금 더 경청하기 위해서였다. 

통역시간을 합쳐 10분이 넘는 시간동안 받은 눈빛들은 뜨거웠고, 두려울 것 없는 강인한, 우리 스스로만 존재했던 느낌이었다. 

발언 중 들었던 휘슬소리, 박수소리, 환호소리.. 내가 그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 처음 느껴보는 ‘내가 나로서 살아도 괜찮은’ 순간이었다. 

대행진을 하며 처음과 같은 두려움은 온데 간데 없고 벅차다 못해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본 나의 동료들만 기억에 남는다. 

사실 지금도 대행진을 떠올리면 꿈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그곳은 마치 생존자대회 같았다. 아니, 더 멋진 말이면 좋겠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야기가 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성매매경험 당사자구나!’ 그곳에서 우린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성매매경험에 대해 이야기 했고 함께 만나 걷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이야기 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파리 시내를 가로지르며 행진하는 동안 각국의 당사자들이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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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성평등 모델 도입 10년 기념 국제심포지엄

4월 13일, 성매매 된 여성을 처벌하지 않는 성평등 모델을 프랑스가 도입한지 10년이 된 날이다. 

프랑스 국회에서 이를 기념한 국제 심포지엄이 진행되었다. 프랑스에서 법이 시행된지 10년이 지난 지금,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92%가 이 법을 긍정적인 진전이라고 평가 한다. 

프랑스인의 76%는 성매매를 폭력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도 법이 생길 당시에는 성매매를 여성폭력으로 이해하지 않는 시각이 많았지만, 법이 생기고 난 이후 사회의 인식 전체가 함께 변화해온 것이다. 

반면에 성매매를 합법화한 독일의 경우 2002년 성매매 합법화 이후 성매매 상황 속에서 100명 이상의 여성들이 살해되었을 뿐만 아니라 

약 20만명 이상의 여성이 성매매에 유입되어 전혀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착취 당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몇 년 동안 독일에서는 노르딕 모델 도입을 요구하는 정치적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국제 심포지엄을 통해 다양한 나라의 당사자, 연구자, 활동가들의 발표를 통해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 전 세계 각지에서 

성매매 여성 인권 보호와 성매매 없는 세상을 위한 연구와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랑스 출장 기간 동안 현지 통역으로 함께 해주신 목수정 선생님께서 국제 심포지엄 내용을 바탕으로 오마이뉴스에 기고하신 글을 첨부한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225925&SRS_CD=000001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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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스테르담

빨간색 예쁜 기차 유로스타를 타고 창 너머 풍차가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벨기에를 보며 암스테르담(네덜란드)에 도착했다. 

파리와는 다른 아름다움이 물씬 풍겨지는 암스테르담과 길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피어나는 벅찬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진을 남겼다. 


- 암스테르담 홍등가

4월 15일 성매매가 합법인 암스테르담에 다녀온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은 했지만 한국에 돌아오고 몇주라는 긴 시간동안 사실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그날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나라 네덜란드 그리고 그 안에 ‘붉은 홍등가’, 강의로만, 책으로만 보던 그곳은 생각보다 컸고 온 감각이 날카롭게 서는 서늘함이 드는 곳이었다. 

내가 전시되어 있는 무력감과 수치심이 드는 공간이었다. 

아름다운 강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펼쳐진 풍경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었다. 

웃으며 걷고 있는 구매 남성들 사이 동양인 여자 4명이 나란히 걸었다. 조롱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커튼 뒤 여성들이 겪는 구매자와의 실갱이가 훤하게 보이는 듯 했고 메인거리를 벗어나자 그냥 감각으로 ‘뒷방이구나.’를 알게 되었다. 

구매 남성들의 인종이 바뀐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양 백인 남성들은 메인거리에, 유색인종남성들은 뒷 골목을 서성였고 나는 그곳을 걸으며 철저한 계급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를 보았다. 

구매 남성이 나간 뒤 언니 표정을 보게 되었는데, 영혼이 없는 얼굴이었다.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나를 버린 느낌. 방금까지 애써 생글 웃던 여성은 그냥 그렇게 다시 다른 남성을 기다리며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몇시간전 까지 프랑스에 있던 나는 그 짧은 시간에 ‘다른 세상’에 와 있었다. 

프랑스 노르딕모델 채택을 위해 800km를 걸으며 사람들을 만나 당사자로서 현장을 증언했던 로젠이셰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성매매는 강간이다. 당신이 성구매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면 강간당한 여성은 영혼 한 조각이 뜯겨져 나간 것이다.’

암스테르담 홍등가를 다 돌고 나서 트램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울컥했던 마음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내가 본 현실이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 

홍등가 안에서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2그룹을 보았다. 명품의 나라 답게 명품가방을 손에 들고 손가락으로 여성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성을 향한 눈, 여성을 가리키는 손가락,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모습은 마치 전시관에서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철저하게 나랑은 다른 여성, 나는 달라! 라고 온몸으로 거부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떤 나라에서, 어떤 법 아래에 살고 있느냐,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자국민의 인식 정도도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옆에 한 커플은 남성이 여성을 향해 말했다. 

‘너는 나만의 피앙새지?’ 그 말의 뜻은 무엇일까? 해석하고 싶지 않다. 

이 골목을 찾는 사람들의 목적은 다양하다. 

성구매를 목적으로, 관광을 목적으로, 사랑을 확인하는 장소로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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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낮에 다시 홍등가를 방문하였다. 어린아이를 포함한 가족들이 거리를 차지했다. 

익숙한 빨간 등 아래 여성들이 있다. ‘낮엔 장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여성들을 보니 뚱뚱한 여성, 나이가 많은 여성, 유색인종 여성들이 있다. 

낮엔 방 가격이 조금 더 싸니까 낮을 택하는 것이다. 

밤/낮으로 공간을 대여하는 업주와 건물주, 길거리에 휘파람을 불며 신난 수많은 구매 남성은 보이지 않은 채 여성만 보여진다. 

어젠 안보였던 성노동자 인권을 위한 센터가 보인다. 

예쁘게 꾸며진 가게 안에 누가 봐도 직장인 여성 둘이 앉아 근무하고 있다. 이질감이 느껴졌다. 

밖엔 더 많은 여성들이 ‘성노동 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해라/내 몸은 내가 선택한다 ’등 내가 본 현실과 다른 인권이라는 이름의 착취가 펼쳐진다. 

골목엔 10유로에 섹스를 구경할 수 있는 곳, 3유로에 스트립쇼를 구경하는 곳, 

성기모양의 크레페, 기념품 샵엔 여성들의 사진이 담긴 마그넷, 성관계 모형, 나체 엽서들이 즐비하다.  

나에게 성매매 합법화란 어지러울 정도로 마음이 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파리에서 느낀 자유는 온대간대 없고 다시 한국에서 느꼈던 두려움이 느껴졌다. 

동시에 우리가 가야 할 방향도 눈으로 확인했다. 

성매매 합법화 사회는 구성원 모두에게 건강하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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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암스테르담은 동성애가 처음 합법화 된 곳, 통창의 커피 샵(대마샵)이 한집 걸러 있는 곳으로 

겉으로 보기엔 자유롭고, 편견 없고, 낙인 없는 곳으로 모두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그런 평등한 곳으로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홍등가의 여성들은 자유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았다. 

돈을 번다는 이유로 온갖 눈빛(호기심, 경멸, 평가,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나는 달라’의 눈빛을 보내는 사람 등)을 감당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감히 나는 자유라는 말을 붙일 수 없을 것 같다. 

낯선 여성의 눈 맞춤에 홍등가의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건 통 유리 안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는 일, 딱 거기까지였다. 

통유리 안에서 웃고 있는 여성들, 남성들을 향해 손짓하고 적극적인 흥정과 더불어 성매매를 권유하는 여성들, 우리는 홍등가를 그렇게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회적 결핍과 폭력이 그들을 그곳에 앉혀 놓았는지 정말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성매매를 할 수 있는 자유인지 조금 더 세심하게 물어야 한다. 

사회는 그들에게 말한다. ‘원한다잖아.’, ‘돈 벌려고 자기들이 성매매 하는 건데 뭐, 남자들은 돈을 내고 원하는 것을 얻고 여성들은 섹스하고 돈도 벌고 상부상조 아니야?.’ 

정말 여성들이 원하는 것이 돈이고, 일할 수 있는 자유라면 그 일이 꼭 성매매여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이 원한 건 단언컨대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을 것이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한 선택 아닌 선택이지 폭력이거나, 강간, 폭언, 무너진 자존감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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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암스테르담을 기억하기 위해 마그넷을 샀다. 

행여나 기억이 미화되어 암스테르담을 아름다운 나라로 기억하기 싫어서, 나라도 그곳의 여성들을 기억하고 싶어 마그넷을 손에 쥐었다. 

이번 프랑스/암스테르담 출장을 통해 우리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의 대안, 어떤 법을 향해 나아갈지는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글 ㅣ 전북성매매경험여성자조모임 키싱구라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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