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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민들레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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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댓글 0건 조회 3,087회 작성일 21-09-2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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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해마다 9월이면 2000년 군산 대명동 화재 참사 그리고  2002년 군산 개복동 화재참사를 맞이한다. 우리는 2006년부터 죽음으로 여성인권의 역사를 새롭게 쓴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순례를 해왔다.
오늘 열여섯번째 민들레순례단의 걸음을 멈추지 않고 팀별로 순례를 이어나갔다. '우리 아니면 누가 기억하겠는가' 하고 맨 처음 시작된 발걸음이 어느덧 세월을 더하고 있다. 매년 순례를 할때마다 느끼는 통증의 모양은 다르지만  잊지 않겠다는 다짐은 단단하게 우리안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또 한번 다짐합니다.
잊지않겠습니다.
그리고 행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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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복동 화재참사 현장에서 대독한 성매매경험여성자조모임 '키싱구라미'의 추모글을 공유합니다.]

<span style="font-style: italic ; font-weight: bold; font-size: 2em; line-height: 1.0em; font-family: "Nanum Gothic", Hanna, Jeju Gothic, Serif;>
언니에게
</span>


안녕하세요. 성매매경험여성자조모임 ‘키싱구라미’입니다.

언니들, 지난 1년간 잘 지내셨나요?
저희를 내려다보며 “오랜만이야.” 웃어주실 것 같은 오늘입니다.

9월이 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달려가 안고 싶기도, 재잘재잘 떠들고 싶기도, 고맙기도, 안쓰럽기도, 감사하기도 한 여성들이 있습니다. 처음 이 곳에 와 언니들을 추모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우리 언니 타고 갈 예쁜 학을 접고, 언니들에게 감사하다, 고맙다, 미안하다 편지를 썼습니다. 다시는 나 같은 언니들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아 우리는 오늘도 마음 다해 언니를 기억합니다.

언니가 고통 속에 희생되기 며칠 전 일기를 보았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일기 속 ‘죽고 싶다.’는 한 문장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희생되는 순간, 아니 일기를 쓰는 순간에도 언니는 살고 싶었을 겁니다. 나 같았거든요. 모진 말들과 시선을 견디고 사는 언니들에게 아마도 하루를 살아낼 힘을 내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창살너머 자유롭게 나는 새들을 보며, 엄마와 손을 잡고 거니는 소녀를 보며 하루라도 남들과 같은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으셨겠지요. 언니 손 꼭 잡고 언니가 가고 싶었던 집으로 가는 길 재잘재잘 떠들고 싶은데 우리 언니만 없다.

9월이 되면 업소에 있었던 무기력한 제가 떠오릅니다. “미친년아, 냄비야.” 온갖 상스러운 이름들로 불릴 뿐 그곳에 나는 없었습니다. 차라리 내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것에 감사하기까지 했습니다. 슬리퍼 신고 업소를 탈출했을 때 안전한 이 곳으로 와 나는 내 이름을 찾았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저는 언니들의 희생으로 얻은 삶을 언니들의 이름을 찾는데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언니, 오늘은 언니의 칭찬을 듣고 싶습니다.
올해 드디어 선미촌이라 불리던 집결지가 해체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에 노고의 결과입니다.
근데 언니, 선미촌 해체를 간절히 원했지만 이상하게도 선미촌을 잃고 싶지 않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선미촌을 거닐 때 제가 있었던 집결지가 생각나서였을까요? 죽도록 다시 가기 싫은 곳인데, 왜 아쉬운 마음이 들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오늘 같이 마음이 무거운 날이면 침대하나로 가득 찬 창문 없는 방, 붉은 등 아래 가만히 앉아있고 싶어집니다. 모두가 안락한 집으로 돌아간 그때서야 비로소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던 골방 안에 나를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과거를 사는 것만 같습니다. 

언니, 오늘은 언니가 우리를 안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언니 품에 안겨 속 시원히 울고 싶은 하루입니다. 우리 함께 있었으면, 언니의 오늘이 2000년 9월 19일에 멈추지 않았다면 그럼 참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에 마음이 일렁입니다.

언니, 다시 내년에 언니를 보러올 때엔 오늘보다 조금 더 강한 우리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칭찬받을 소식 잔뜩 들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며 숨을 몰아쉴 수 있다면, 그럼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변화되는 세상을, 세상을 변화시킬 우리를 지켜봐주세요. 내년 이맘 때 다시 만나요. 우리

언니들의 든든한 자랑거리가 되어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2000년 9월 19일 언니에게, 키싱구라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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