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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댓글 0건 조회 7,324회 작성일 17-11-2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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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 '여성의 말하기, 증언과 피해자화의 사이에서' 라는 주제로 통합지원워크샵이 진행되었다.
부설기관(자활지원센터, 쉼터, 현장상담센터)의 발제와 전체활동가들의 열띤 토론이 있었다.
발제 중 자활지원센터의 발제를 뉴스레터에 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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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과 피해자화의 사이에서'


이번 통합지원워크샵을 준비하면서 일곱 명의 언니들과 만남을 가졌다. 그동안 우리는 자활지원센터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성매매 경험에 대해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왔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그 말을 통해 여성들을 둘러싼 사회적 구조와 그 안에서의 성매매 여성의 위치를 발견하고, 그 경험 속에서 피해뿐 아니라 성매매 현장에서 매 순간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협상했던 행위자로서, 그리고 탈업을 선택하고 실행한 변화의 주체로서의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을 모색하고자 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들을 일곱 명의 언니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했다.

자신의 성매매 경험을 말하는 것은 다른 경험을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위험을 부담하는 일이다. 타인과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사회적 통념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일이며, 그것을 극복하는 힘은 쉽게 생기지 않는다. 언니들도 사회나 자신이 보기에 떳떳한 경험이 아니라는 생각에 말하기 주저되었다고 한다. ‘나를 어떻게 볼지 불안하고, 내 경험을 말한다 해도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도 있었다. 듣는 이가 비경험자일 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상이 누구든 한 번도 누군가에게 내 입으로 꺼내 보지 않은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는 모두 다 비난으로부터, 자괴감으로부터,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안전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입을 열어 나의 경험을 말하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듣는 이만 준비된 말하기는 부담스러운 일이며, 말하는 이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날것의 경험을 꺼내게 된다. 그렇게 경험을 꺼내는 방식으로는 객관화된 이야기보다는 과거의 강렬하게 남았던 기억들과 그때 느꼈던 감정들에 초점이 맞춰지기 쉽고, 현재에서 그 과거의 감정을 다시 재현해 느끼게 된다. 때문에 일곱 명의 언니들은 말하기 위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 그 당시의 감정인 분노, 우울, 수치스러움과 만나게 되었고, 그 때문에 말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 언니는 경험을 처음 말하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상자를 열었을 때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와 어쩔 줄 모르게 되는 그런 것 말이다. 성매매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안에 깊숙이 누르고 눌렀던 부정적 감정들과 그때는 버티기 위해 받아들였던 행동들이 이곳에서는 피해라는 이름으로 해석될 때 많은 혼란이 야기된다.
그러나 성매매 경험을 말하는 것은 그러한 혼란들을 야기할 수밖에 없지만 나의 경험과 성매매에 대한 통념을 재해석하고, 종국에는 그 경험의 총체인 나에 대한 재인식을 하기 위한 과정이다. 이 과정을 안전한 공간에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준비되었을 때 할 수 있다면 가장 효과가 있을 것이다.

증언과 피해자화의 사이에서
우리가 만나는 여성들은 세상에 있으면 안 되는 폭력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언할 수 있는 증인들이다. 그들은 그 경험을 한 피해자인 동시에 생존자이며, 자신의 경험으로 성매매가 어떤 것이라고 말할 자격을 가진 증인인 것이다. 그들을 피해자라고 호명하는 것과 생존자, 혹은 증인이라고 호명하는 것은 다르다. 법정에서 피해자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위치이지만, 사회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가 피해자라는 호명을 받을 때 우리는 그저 불행한 피해만 입은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기 쉽다. 때로는 피해자라는 말을 받아들여 나의 힘겨움을 이해받기도 하고 보호에 오래 머무르고 싶은 마음을 가지기도 하지만, 피해자가 되기는 싫다. 또, 피해자가 되기 싫은 마음과 별개로 피해자가 아닌 것 같은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그곳에서 겪은 일은 피해가 맞지만 바로 그곳을 내 발로 갔다는 이유가 스스로를 순수한 피해자일 수 없다고 생각하게 하고, 이러한 생각들은 경험을 말할 때마다 내 자신이 싫어지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사회 통념적으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피해자가 아닌 것 같다는 언니도 있었다. 피해자라는 개념은 이토록 수동적인 위치를 자처한다. 자발이 아니어야 하며, 누군가의 인정을 받을 때에 비로소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의 증언은 거리감이 있고 힘이 세다. 그 피해를 입은 내가 주목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주체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성매매가 어떤 것인지 당사자의 시선으로 알 수 있게 한다. 영화 아이캔스피크에서 보여준 미첼과 나옥분의 증언 방식이 생각난다. 증언으로서의 말하기란 자신의 피해를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경험이며, 단순히 피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즉, 가해를 드러내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경험 말하기가 자기해석과 치유의 과정으로 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렇다면 우리는 자활지원센터에서 경험을 말하고 재인식하는 과정을 어떻게 나누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게 된다. 센터는 물론 안전한 공간이지만 말하는 이가 아직 확신을 갖지 못하는 초기 상황에서는 앞서 말한 위험의 부담을 해결해 주기 어렵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꺼내는 작업보다 재인식에 대한 교육이 먼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든다. 나의 경험을 재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 주어져야 말할 준비가 되고, 준비가 되었을 때 스스로 입을 열어 말하지 않을까, 듣는 사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돌아가 판도라의 상자를 새롭게 상상해 본다. 상자를 열기 전, 신에게서 이 상자에 무엇이 들었는지 설명을 들은 판도라가 상자를 열지 말지를 고민한다. 어느 날은 진지하게 또 어느 날은 가볍게 고민하던 날들이 지나고, 자신의 상상 속에서 몇 번 상자를 열어 보았던 판도라가 상자를 조금 연다. 일부가 쏟아져 나온다. 당혹스러웠지만 힘을 주어 상자를 닫는다. 몇 번을 반복한다. 그러다 준비가 된 어느 날, 판도라는 상자를 자신 있게 열었을 때, 부정적인 감정을 날려 보내고 그 안에 남아 있는 희망과 인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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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ㅣ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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