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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 Act] 맥락을 알게되는 페미니즘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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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댓글 0건 조회 7,417회 작성일 16-11-3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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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메갈리아 논쟁, 여성혐오, 성소수자 혐오, 남성페미니스의 출현 ....
2016년 한해 페미니즘 이슈가 폭발했다.
그 모든 일들은 맥락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맥락을 알아야 ‘더 나은 맥락’을 만들 수 있기에 ‘맥락을 알게 되는 페미니즘 강좌’를 진행했다.

강좌1. 11월  2일, 한국에서 살면 '그런 남성'이 된다 ㅣ 오찬호
강좌2. 11월  8일, 성산업의 금융화와 빈곤한 여성의 몸의 담보화 ㅣ 김주희
강좌3. 11월 15일, 메갈리아의 반격, 그 이후 페미니즘 ㅣ 권김현영

참석하신 분들 중에 강좌소감을 보내왔다. 그 소감을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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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후기1. 한국에서 살면 '그런 남성'이 된다 ㅣ 오찬호

오늘 주제가 파워포인트 화면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남자다움, 여자다움이 아닌 오직 사람다움!” 뭐뭐 다움에 대한 고민, 그리고 마지막에 오직 사람다움이라고 적혀 있는 주제에 나는 오늘도 재미있겠구나 기대를 갖고 자리를 앉았다.

기억에 남는 내용은 대략 이정도다.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강조할수록 지금의 우리사회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사회가 병이 들면, 개인도 병이 들게 마련이다.”
“지금의 이 사회가 너무나 무섭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는 고정관념과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구조와 문화 속에서 정신만 바짝 차린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그저 인간다움의 실천일 뿐이다.”

그리고 내가 왜 여기에 관심 갖게 되었는가를 3가지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 나누었다.

첫째, ‘저 사람 군대 갔다 왔어?’
가볍게는 재미있다가도 차츰차츰 생각해가면서 얼마나 한국남성들에게 군대라는 단어가 비논리적이고, 비토론적이며, 비이성적일 수 있을까 탐구해보고 싶다는 강사님의 말에 많은 공감과 고개 끄덕임이 있었다.

둘째,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
적어도 사람이라면,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한 인간이라면 지금 우리주변의 부당한 문제에 있어서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무언가 대단한 해결책과 대답을 찾아야 한다기보다는 미흡하지만 미흡함을 구체화하는 과정들의 반복이 필요하고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

세번째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땅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으로부터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약속합니다. 노력합니다. 잔잔한 일상의 실천을 통해 지금의 남성중심의 사회가 조금이나마 달라지도록 애쓰겠습니다. 그래야 거창하게는 우리 후손들에게 그리고 우리 쿵쿵이들에게 당당하게 이 땅을 반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도 한국에 사는 그 남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구입해서 읽어봐야겠다.

글 ㅣ 김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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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후기2. 성산업의 금융화와 빈곤한 여성의 몸의 담보화 ㅣ 김주희


이번 강좌는 최근 성매매 산업에는 다양한 대출 상품과 금융업자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특히 제2금융권에서는‘유흥업소 특화대출’상품을 폭발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대출 시장의 말단에 있는 성매매 여성들의 몸은 이들의 이윤을 위해 ‘담보화’가 된다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위 강의를 들어서인지 며칠 전부터 신문기사 제목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성노동자 6명 중 5명 최저임금 영향권/ 여성 10명 중 4명 저임금 상태 OECD 1위/ 청년층 부채 급증 2·3금융권 고금리 대출비중 높아/ 여성 대출자·30대 빚, 최근 5년간 빠르게 늘어났다’등 여성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그녀들의 부채에 대한 이야기였다.

김주희 강사의 말대로 과거에는 일상적 재생산비용(생활비)을 임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고, 그 임금은 가계를 책임질 수 있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임금이 그 비용을 보장할 수 없게 되면서 수입에 비해 지출이 많아지게 되었다. 또한 상품이 세분화 되면서 꼭 사야만 하는 것들로 인식돼 소비해야 될 상품은 점점 더 많아져 부채에 의존하게 되었다.
부채경제는 사람을 더욱더 가난하게 만들고, 개인에게 더 아끼라고 하면서 개인복지의 삶을 소소한 것으로 만들었다. 개인이 노동조합을 통해 임금협상을 하고 노동의 권리를 찾기보다는 싼 가격에 시키는 대로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가난을 통해 체제를 유지 했다.
그녀의 강의는 그동안의 내 궁금증에 대한 답이 되었다.

예전부터 나는 궁금했었다.
왜 나의 생활은 예전보다 수입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낀다고 해도 지출이 감소하지 않고 부채에 의존하게 된 것일까?
왜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라며 직업을 갖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목적인양 스스로를 일의 도구로 전락시키는가?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범람으로 함께 일하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면서, 본인의 환경을 더욱더 열악하게 하는 시스템에 왜 공조하는가? 등.
결과적으로 개인의 삶을 옥죄는 많은 시스템은 개인의 삶을 신경 쓰지 않는 경제체제가 만들어낸 결과이고, 우리가 직면한 문제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의 소비 또한 오래전부터 변화해왔었다.
특별한 만남이 없어도 혼자서 자주 집 앞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집밥보다는 외식에 의존했다. 샴푸 하나면 되었던 헤어제품도 벌써 샴푸, 트리트먼트, 에센스, 헤어크림 등으로 세분화되었고, 돈이 없어도 카드할부로라도 여행을 다녔다. 그래야만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라는 것은 내가 정상적으로 잘 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기준이었다.

김주희 강사는 그러한 소비문화가 더욱더 여성에게 초점이 맞춰져있고, 여성들에게 돈을 쓰게 하는 문화는 성매매산업을 작동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렇듯 소비가 세분화된 세상에서 여성이 혼자서 살아간다고 했을 때 과연 저임금으로 삶이 가능한가? 소비라는 것은 나 혼자 아낀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소비되어지고 부양해야할 누군가가 있다면 더욱더 소비항목들이 많아진다.
그 안에서 남편이나 부모의 자원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부채에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여성전용대출상품은 이러한 여성들을 유혹하기에, 성매매 산업으로 유입시키기에 좋은 미끼가 된다.

과거에 성매매여성은 특수한(가출, 성폭력, 인신매매, 개인 간의 빚등) 경험을 가진 여성으로 보고 피해를 인정하고 국가가 돌봐야한다고 얘기했지만, 최근에는 성매매여성의 대출사기사건으로 개인적 계약관계 의무를 다하지 않고 쉽게 돈 벌어서 소비하려는 여성으로 보고 낙인을 준다.
결국 이들은‘여성전용대출’상품을 통해‘담보물’이 되면서, 동시에 성매매 산업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유일한 자원이 되어 성산업 안으로 더욱더 깊숙하게 결박된다.

김주희 강사는 성매매를 사고하고 상상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했다.
현장방문을 나가면 유흥업소 업주들은 시험기간에“아가씨를 구할 수 없다, 아가씨들이 대기실에서 리포트를 쓴다”며 얘기한다고 했다. 이젠 학자금 대출과 가정사로 인해 여학생들은 고비용-저소득-저신용-고금리-채무악순환-신용불량'으로 특별한 경험 없이도 부채를 통해 성매매로 유입되며, 이러한 양상을 통해 성매매가 얘기되어져야 한다고 했다. 각종 여성 전용 대출 상품은 여성의 몸을 '담보화'하는 조건이 되었다.
특히‘유흥업소 특화대출’상품은 여성들의 차용증 채권을 묶어 성매매여성 집결을 만들고 대형 성매매 업소를 만들었다. 결국 여성의 차용증 즉 몸의 담보를 통해 조직 폭력배, 성매매 업소, 은행은 수익성을 극대화했다.

김주희 강사는 “성매매 산업의 금융화를 통해 성매매는 이 시대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경제 활동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며, ‘노동 없는’ 여성들에게, ‘저임금’으로 생활하는 여성들에게 신용이 부여되고 있는 현실에 도전하지 않으면 ‘여성의 성매매화’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 성매매 문제는 더 이상 특별한 여성에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에게 해당되는 문제가 되었다.
반성매매 운동은 여성을 금융과 자본, 성산업자들로부터 지켜야하는 운동이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대체제를 구축해 성매매이슈를 넓혀야 하며, 성폭력, 가정폭력, 여성의 역사, 메갈리아, 최근의 낙태죄까지 우리가 사는 사회안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아왔던 차별과 억압, 폭력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또한 여성이 가난과 빈곤으로 인해 성매매에 유입되지 않도록 여성의 노동과 임금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며, 여성의 몸이 담보화되지 않도록 신용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제도 개선을 국가에 요구해야 한다.

글 ㅣ 서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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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후기3. 메갈리아의 반격, 그 이후 페미니즘 ㅣ 권김현영

‘메갈리아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미러링 한 적이 있었느냐’
 
그냥 남들처럼 살아오다가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시작한 게 바로 청소년 인권 운동이었다.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청소년을 공부 말고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미성숙한 존재로 생각하는 주변의 꼰대들에 너무나 화가 났다. 처음 본 사람이 반말을 하면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라고 똑같이 반말로 대답하며 항상 분란을 일으켰다.
 
그때 당시 나에게 "사회는 애초에 기울어져 있고, 나와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구나. 내가 내 삶을 바꿀 수 있구나"라는 사실은 20년 동안 살아오면서 드디어 이 땅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점점 이 운동이 고립되어 간다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 뿌리 깊은 차별에 대해 "꼰대"라고 이름붙이고 ‘대부분의 세상을 적으로 돌리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꼰대’라고 불린 사람들은 우리가 싸가지 없다며 화를 내고 관계를 끊어버리거나 무서워했다. 이것은 우리들끼리도 서로 엄격해지며, 문제제기 하고 벌주는 분위기를 만들게 했다.
 
구조에서 누구든 자유로울 수 없는데, 개인을 낙인찍고 잘라내 버리는 방식은 사람들도 바꿔내지 못하고, 스스로도 검열을 통해 몰아붙이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난 꼰대가 아니야!!” 이렇게.. 정말 필요한건 “난 꼰대다. 하지만 그렇게 안 되려고 노력 할 꺼야!” 또는 “꼰대로 살아온 사람들은 어떤 역사를 통해 꼰대가 된 걸까?”, “그게 자신과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가 아니었을까?
 
이건 내가 청소년 운동을 한 당사자로서 ‘스스로’ ‘한계를 알고’ ‘효과적인 방식’이 무엇일지 고민한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 운동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너네는 한계적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다른 것이다.
 
실제로 내가 청소년 인권 운동을 할 때 어떤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가 "너네는 너무 한계적이야"라고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나에게 청소년 인권운동은 사는 존재를 쥐어준 너무나 소중한 부분이었는데, 그 친구는 ‘나’를 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펑펑 울었다. 내 삶이 부정당한 기분이었고, 그때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소수자로서의 삶은 공감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밖으로 들어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고, 굳이 알려고 안 해도 살아지니까. 하지만 잘 모르는 것에 대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 그렇게 말해도 ‘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그때도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는 것 밖에 없었다. 아무런 힘도 없었다.
 
그 친구가 그 말 대신 소수자로서 내 삶을 ‘궁금’해 했거나, 청소년 인권이 더 이상 침해 받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며 ‘활동’했거나, 그냥 자신이 있는 공간에서 부터 자기가 느끼는 청소년 인권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나눴다면. 그렇게 ‘함께’하거나 적어도 당사자가 아니어도 자기 위치에서 ‘연대’ 했다면 누군가의 삶을 부정하고 상처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금 내 상처를 보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내가 많이 아팠구나!라며 나를 위해 울 시간도 필요하고, 맞은 것에 대해 온전히 분노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거기에 대고 후시딘을 발라라, 마데카솔을 발라라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무례한 짓이다.
 
다행이도 당신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당사자 모임에 들어가 함께 내부에서 좋은 문화를 만들어 보는 것. 자기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글 ㅣ 은지(너나나나, 페미니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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