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 Act] 콩물세미나-글쓰기의 최전선 > 활동소식

 

[Out Act] 콩물세미나-글쓰기의 최전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댓글 0건 조회 7,418회 작성일 16-11-30 12:17

본문




글을 쓴다는 것은 참 무거운 숙제이다. ‘말’과는 다르다. 나의 말은 상대에게 전달이 되기도 하고 그저 흘러가기도 한다. 말에서 나온 실수는 질끈 눈을 감고 발뺌을 할 수도 있고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라며 희석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은 길이길이 남는 기록이다. 어릴 적 세상을 다 안 것만 같은 기분에 써보았던 글은 때론 한 밤중 이불킥을 날리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30여년 불효를 하다가 엄마의 생일을 맞아 쓴 편지글은 하루아침에 이 시대 최고의 효녀로 등극시키게 하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무서웠다.   

저자는 말한다. ‘내 삶과 같은 조건에 놓인 사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나의 절실함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나만 쓸 수 있다’고 한다.
짧지만 강한 문장은 너무나 간단하게 글을 쓰는 두려움에서 나를 해방시킨다. ‘너의 글은 틀리지 않았어. 그 속의 이야기와 감정들은 지금의 너를 만들어낸 경험이고 관계야. 네가 살아오며 순간순간 던졌던 질문이고 오롯이 너의 입장에서 구성된 기록이야. 그러니 더 이상 글을 쓰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을 해주는 듯하다. 

나의 글쓰기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내가 자주 접하는 글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답을 찾는데 3초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내가 가장 자주 읽는 글은 진술서다. 상담소에서 성매매경험여성들을 만나고 초기상담을 하고 나면 우리는 진술서를 쓴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진술서를 쓰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하거나 초안을 보며 함께 수정을 하는 작업을 한다. 진술서를 보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자꾸 질문을 던지며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픈 언니를 더 괴롭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완성된 진술서는 A4용지 서른 페이지가 되기도 하였고 채 한 페이지를 채우지 못하기도 한다. 진술서를 읽으며 질문을 던지면 언니들은 답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기도 하고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분노도 하고 억울해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지난한 진술서 쓰기의 과정을 겪을 때면 이때가 가장 난감하고 또 가장 반가운 순간이다. 물음표가 느낌표로 순환하는 순간, 묵혀두었던 감정이 폭발한 순간 언니는, 우리는 글쓰기의 최전선에 당사자로 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의 경험들은 언니 일대기의 한 페이지에 글로써 자리하게 된다. ‘글이란 또 다른 생각을 불러오는 대화와 소통 수단이어야 한다’라는 저자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나는 이렇게 글을 쓰며 언니들과 소통을 하고 경험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진술서 속에서 세상이 말하는 가치 이상의 것을 배우기도 한다.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이 모두의 인생인 것처럼 말하는 정형화된 사실과 일관된 가치관에서 벗어나게 한다. 각자의 경험이, 한 사람 한사람의 감정이, 그 언어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그리고 다르다는 것이 결코 유별나지 않은 것임을 느끼게 한다. 따로따로 같지만 그 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연결지점이 모두의 삶을 잇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궁금해진다.

문득 내 인생의 진술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삶을 좀 더 고민하고 나의 경험을 글로 표현하면서 답답해하기도 하고 화도내고 싶고 실컷 울어보고도 싶다. 나의 삶이 나에게, 또 나와 연결된 모두에게 감동으로 전해졌으면 좋겠다.

글 l 송선종

#그림li_pds_204_14940023_1190553927678331_2998148931555320054_o-tile.jpg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