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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 산문] 4강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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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댓글 0건 조회 7,400회 작성일 14-06-03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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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p><p align="right"><font size="2">봄봄(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font></p><p><font size="2">꿈은 교사였다.<br>교사라는 직업윤리보다는, 교사라는 사명보다는 교사라는 인물군에 대한 흠모가 아니었을까. 나의 욕망은 경외를 지나쳐 꿈이 되었다. 시에 대한 관심도 시보다는 그 시를 쓰는 시인이 더 궁금해서였고, 소설을 읽으면서도 궁극의 목표까지는 아니어도 소설에 묻어나는 작가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것에 더 흥미롭다. 소설 한 권을 쓰고 나면 달라지는 작가를 현재형으로 느끼며 동시대적인 감각에 매료되었다. 이 시대에 시를 쓰며 살아남는 사람들은 어떤 인물군일까 궁금했다. 나는 시인과 소설가를 흠모했다. </font></p><p><font size="2">꿈만 교사였다.<br>그 길로 가는 길은 멀어졌고 나는 다른 일을 했다. 내가 끝까지 간직한 것은 시와 소설이었다. 그것을 읽는 것! 그것에 대해 쓰는 것! 그것을 읽고 난 후, 미세하게 달라진 나의 정체로 말을 하는 것! 길은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 읽고, 쓰고, 말하는 사이가 되는 시간을 만들었다. 글쓰기강좌라는 이름을 붙였다.</font></p><p><font size="2">나는 매주 주제를 정했다. <br>그와 관련해서 선정한 책을 그들은 읽고 온다. 그 책이 글쓰기에 영감을 줄 때도 있고 전혀 상관이 없을 때도 있다. 우리는 함께 소감을 나눈다. 나는 주제에 맞는 짧은 강의안을 준비한다. 전달한다. 그들은 듣는다. 반응이 없으면 훅 넘어간다. 그다음이 하이라이트다. 그들이 과제로 써온 글을 읽는다. 글쓰기는 쓰기에 멈추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낭독했을 때의 울림을 전해준다. 그들은 글을 읽다가 말을 멈칫하고, 우리는 듣다가 호흡을 멈칫한다. 고백과 공감이 만나는 순간이 잠깐씩 지나간다. </font></p><p><font size="2">읽고, 쓰고, 말하는 사이가 되는 시간을 준비하느라, 나는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 오직 ‘글쓰기’뿐. 1강 ‘시작하면 두려움은 사라진다.’를 마치고 알았다. 나의 두려움만 사라지면 되겠구나. 그들은 모두 준비되었다. 소설읽기에서 읽는 책에서도 보이는 것은 오직 글쓰기에 관한 내용뿐. 아, 여기 글쓰기가 있었네. </font></p><p><br><font color="#6600cc" face="돋움" size="2">나는 노트에 연필로 글을 썼다가 두 줄씩 금을 그어 버리고 다시 썼다가 금을 긋기를 반복했다. 무엇인가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내뱉고 싶은데, 그것을 어떻게 소설로 형상화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몇 페이지쯤 써 놓고 내 글은 두서없고 장황한 일기에 불과했다. 바닷가 마을에서 자라다가 서울로 올라온 여자가 이사를 다니는 이야기라니. 게다가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삼기에 나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기도 했다.<br>“누구나 자신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야.”<br>언젠가 관은 말했다.<br>“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특별해. 글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정리할 줄 알거든.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고나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때나 되어서야 자신의 삶을 정리하지.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인지 아닌지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죽음을 맞이한단 말이야.”<br>우리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 어딘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였을 것이다. 그는 또 말했다. 세상에 전적으로 평범하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누구나 노트 몇 권쯤의 분량으로 할 말은 있는 법이라고. 10년을 살았든 100년을 살았든 말이다. 맞는 이야기였다. 거리를 걷고 있는 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 속에 그 어떤 특별한 사연을 숨기고 있을지 감히 누가 알겠는가. 나는 내 속에도 똬리 틀고 있을 게 분명한 나만의 특별함을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찾아내 보고 싶었다. [김미월, 『여덟 번째 방』 217-218p]</font></p><p><br><font size="2">예전에 읽었을 때는 그냥 지나갔을 문장들이 지금은 다시 보인다. 2강 ‘글을 쓰는 첫 마음’에서 과제로 내준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그들의 글을 읽고 알았다. 그들의 평범함 속에 가려진 특별함을.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스타일style이라는 외래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스타일이 스페셜special이 되는 순간이다. 나는 놀랐다. 그들은 부끄러워했다.</font></p><p><br><font color="#6600cc" face="돋움" size="2">출소 후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볼펜 한 자루와 초등학생용 노트 한권을 샀다. 심판위원회의 현장 심사를 받을 목적으로 산 것이었다. 사람들은 꿈 깨라고 했지만 나는 끈질기게 꿈을 꾸었다.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내돌려지면서도 언젠가는 심판위원회에 서는 날이 올 거라 믿었다. 그날이 오면, 내게 세상으로 귀환할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일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준비를 해야 했다. 횡설수설하다 기회를 놓쳐버리지 않도록, 밤마다 노트를 채워나갔다. 조금씩, 남 몰래 한 장씩, 어떤 밤엔 십수 장씩.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나를 위한 변론을 쓰고 있는 게 아니었다. 승민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볼펜 한 다스가 사라졌다. 노트는 열권으로 불어났다. 그 사이 나는 무한히 자유로웠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온전히 나 자신이었다. 인생의 표면을 떠돌던 유령에게 ‘나’라는 형상이 부여된 것이었다. 그것이 내 안에서 나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br>“그럼 우리는 이수명 씨의 첫 비행을 지켜본 사람들인가요?”<br>위원장이 물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정리 발언 같았다. “네”라고 대답했다. [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 333-334p]</font></p><p><br><font size="2">나는 짧은 강의안을 준비했다. <br>그들의 글쓰기 나눔으로 가는 길목에서 다리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어서 길 필요한 없다. 그래도 횡설수설하지 않으려면 머릿속에 맥락을 잘 그려야 한다. 나의 적은 극도의 긴장감,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알 수 없으나 귀에 울퉁불퉁한 철사 가닥을 넣고 양쪽에서 잡아당겨서 생기는 마찰음이 들렸다. 들렸다기 보다는 귀를 갉아먹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2강이 끝나고 사라졌다. 3강 ‘야성의 마음을 찾아서’에서 과제로 써온 ‘부치지 않을 편지’는 그들의 야성을 언뜻언뜻 보여줬다. 덜컥 보여주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보여주기도 하고, 가려서 보여주기도 하고, 슬며시 보여주기도 했다. 그들은 조금 자유로워보였다. 나는 많이 보았나보다. 3강이 끝나고 코피가 길게 쏟아졌다. </font></p><p><br><font color="#6600cc" face="돋움" size="2">그래요, 지금은 반죽의 시간입니다. 분분 흩날리는 밀가루에 물을 한모금 두어모금 서너모금 부어가면서 개어 한덩어리로 뭉쳐야 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부르튼 발뒤꿈치 같을 덩어리가 밀크로션을 바른 아이의 얼굴처럼 매끈해질 때까지 이기고 치대야 하는 시간이지요. 여무지게 주물러야 하는……<br>(……) 소금알들이 마침내 녹아든 물을 조금씩, 인색하다 싶을 만큼 조금씩 부어가면서 밀가루를 뒤적뒤적 섞어줍니다. 밀가루가 축축이 젖어들고 엉기면서 손가락에 들러붙습니다. 손아귀에 잡히는 대로 밀가루를 주물럭거려 덩어리를 만듭니다. 손가락 마디들이 구근처럼 불거지도록 꾹꾹 눌러가면서…… 껌처럼 덩이져 양푼에 들붙으려는 밀가루를 손가락으로 긁어가면서…… 그래요, 언젠가 저에게 이러한 시간이, 반죽의 시간이 찾아오리라는 걸 막연하게나마 짐작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굼뜬 손가락들을 오므리고 펴길 반복하면서 견뎌내야 할 반죽의 시간이 말이에요. 오후의 빛이 으깨진 홍시처럼 널린 부엌 창…… 그 창을 무심히 등지고 앉아서 이렇게 꾹. [김숨, 『국수』 49-51p]</font></p><p><br><font size="2">그래요, 지금은 글쓰기강좌 시간입니다. <br>다음 4강은 ‘이것도 글이 될까요?’ 과제는 ‘당신의 소울푸드 이야기’입니다. 5강의 교재로 읽을 김숨의『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과 신간 소설집 『국수』를 읽고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아직 그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입 안에서 말은 웅얼거리고 머릿속에서 생각은 뒤엉키고 심장은 아팠습니다. 김숨은 언제 이렇게 많이 달려왔을까요? 묵묵히 천천히 또박또박 의연하게 그가 걸어온 시간이 보입니다. 아주 낯설었다가 아주 친근했다가 아주 무서웠다가 아주 슬퍼집니다. 눈물 한 방울도 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생의 비의가 느껴집니다. 나는 지금 이 장편과 소설집에 대해서 길게 말할 수 없습니다. 적확한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글쓰기강좌 시간입니다. 그래요, 언젠가 저에게 이러한 시간이 찾아오리라는 걸 막연하게나마 짐작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심약한 심장을 다독이며 견뎌내야 할 시간이 말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기보다는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찾아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와 소설을 간직한 죄처럼 말입니다. </font></p><p><br><font size="2">2014. 5. 然</font></p><font siz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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