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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산문] 취향을 갖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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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댓글 0건 조회 7,125회 작성일 14-04-0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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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드라마 ‘신의 선물-14일’을 보며 중얼거린다.
1. 작가는 드라마 말고 소설을 써야 할 것 같아.
2. 작가는 설마 ‘미야베 미유키’를 읽었겠지?
드라마는 이야기의 얼개가 시나리오나 극본의 형태보다는 소설로 쓰였으면 어땠을까를 상상하게 한다. 그만큼 한편 한편씩 보여줄 때마다 보여주지 않은, 말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배우들의 주위에서 아우라를 뿜어낸다. 극대화된 몰입 뒤에 던져주는 또 한 장의 새로운 카드, 그것은 시청자의 허를 찌르기도 했다가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드라마가 끝날 때마다 그야말로 허걱이다. 무너짐을 목표로 할 것만 같은, 폐허의 잔재를 가장한 거대한 구조는 드라마가 다 끝난 다음에야 그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처럼 말이다.
이것은 나의 취향이 아니다. 미스터리, 범죄, 액션, 스릴러, 공포 같은 것. 그런데 이렇게 가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뭔가 다른 것 하나를 찾아낸다. 나의 취향을 자극하는 어떤 것. 브라운관에 널브려놓은 이야기들의 향연. 가지에 가지를 치고, 다시 가지를 치고, 그 가지가 어떻게 잎을 맺었는지, 어떻게 잎을 떨어뜨리는지, 어떻게 꽃을 피워내는지, 소설이 끝나야 하듯, 이 드라마도 끝나야 우리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군데군데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이미지들이 끼어들지만 드라마를 볼 때 소설을 읽는다고 상상하면서 보면 나쁘지 않다. 마치 정유정의 소설을 읽으며 영화를 상상하듯 말이다. 
<img width="333" align="center" src="http://www.yonggamhan.org/liguard_bbs/aribbs/data_file/li_etc_39_201403-godsend14-vert.jpg"> 

공간의 소설읽기 모임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들을 읽었다. 추리소설은 나의 선택지가 아니다. 하지만 기회는 온다. 그간의 추리소설에 대한 편견을 완전 깨버릴 수 있는, 그리고 취향의 선택지에 추가한다. 『이유』나 『모방범1.2.3』 등 분량이 상당한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소설이 읽혔던 것은, 책을 읽을 때의 속도를 독자가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숨 막히는 추적이나 범인을 찾아내는 퍼즐게임보다는 추리의 형태 안에서 그려내는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초상, 그 인물들이 어떻게 하나의 살인과 범죄에 연결이 되어 있는지 그 이유와 나름의 사정들을 낱낱이 소상하게 친절하게 이야기해준다. 그래서 독자는 범인을 찾아내는 것도, 인물에 대해 미리 상정하는 것도 멈추고 이야기의 흐름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잘 좇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순간 어디서 어떻게 길을 잃을지 모른다. 
소설 속 인물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것, 그래서 모두가 하나의 살인사건에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어느 누구도 범인이라 판단할 수 없게 만드는 자명함, 그래서 그의 추리소설을 읽고 나서 드는 상념은 그간의 편견에 쌓여있던 나의 시선에 대한 부끄러움과 편견 없는 세상의 불모와 불가능성에 대한 탄식이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인가, 내가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본 것의 내가 보지 못한 이면은 무엇인가. 진실은 명확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진실은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자 하는 눈이다.
이렇게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은 나의 취향이 아니다. 아껴 읽고 싶은 소설이나, 무슨 말인지 잘 몰라도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난해함과 어려움이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소설들이 있다. 이런 경우에는 소설의 재미나 형식이나 내용보다는 정서적인 측면이 강하다. 어떠한 감정이 밀려오는가, 어떠한 감흥이 몰아치는가, 어떠한 흥분이 도래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소설적 자아를 통해 나타나는 작가의 고민과 가치, 윤리적 태도에 대해 나는 어떻게 감정이입하고 어떻게 긍정하거나 부정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조경란을 함께 읽는 것은 나의 숙제다. 재미없다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왜 이렇게 어렵게 말을 하냐고, 우울하다고 이구동성 난해함을, 심심함을, 무력함을 호소한다. 나는 어디서든 걸리기를 바란다. 여러 결의 소설을 읽는 것은 어디서든 자신을 자극하는 하나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든 하나만 걸리면 된다.
4년째 소설읽기 모임을 하며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들에게 주고 싶은 것은 나의 취향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취향을 갖는 것이다. 모두가 다 좋아하는 소설 말고, 베스트셀러 작가 말고, 나만이 좋아할 수 있는 작가, 나에게만은 매력적인 작가, 나만이 그 빛을 알아볼 수 있는 작가, 눈 밝은 독자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2014. 3. 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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