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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제7일 / 위화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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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댓글 0건 조회 7,187회 작성일 14-03-0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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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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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랐을 때, 나는 셋집을 나와 공허하고도 모호한 도시를 휘적휘적 걸어갔다. 목적지는 빈의관(殯儀館). 사실 이건 오늘날의 명칭이고 예전 명칭으로 하면 화장터였다. 나는 아홉 시 전까지 빈의관으로 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나의 화장 예약 시간이 오전 아홉 시 반이라고 했다. [위화, 『제7일』 11p]
소설은 이렇게 시작했다. ‘나의 화장 예약 시간이 오전 아홉 시 반이라고 했다.’에서 잠깐 시간을 멈춘다. 제목은 창세기에서 따왔음을 짐작한다. 화자는 ‘나’인데, 나는 아직 화장을 하지 않았다. 화장을 예약해야 하는 사람은 죽은 내가 아니라 현세의 누군가이어야 했다. 물음표를 하나 던지고 소설을 읽는다. 그럼 나는 죽었는가? 
반가운 이름이다. 위화. 대체로 한국소설을 읽는 나로서는 몇 안 되게 읽어본 외국작가 중 한사람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은 품절되거나 절판되었고, 『허삼관 매혈기』는 표지가 바뀌었고, 『살아간다는 것』은 제목을 『인생』으로 바꾸었다. 내가 읽었던 위화는 사라졌다. 소설읽기모임에서 위화를 읽는다. ‘다시 읽기’의 통찰은 고전에서만이 아니다. 『허삼관 매혈기』와 『인생』을 다시 읽으며, 나는 그때 매혹되었던 사실만 기억이 난다. 정확하게 ‘무엇에’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 느꼈던 감동과 떨림과 흥분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읽는 위화는 고전을 읽는 것처럼 옛날이야기로 느껴진다. 아쉬웠다. 책이 표지를 바꾸고 제목을 바꾸는 동안 내 시계가 빨리 돌아간 것 같았다. 신간으로 나온 『제7일』은 반가웠다. 이제야 다시 위화를 만난 느낌이다. 동시대인의 자리에서 그를 만난다. 결코 저버리지 않는 인간에 대한 곡진한 애정, 그런데 이렇게 ‘나의 죽음’으로 시작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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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와 저자 위화>
나는 오늘이 아주 중요한 날, 그러니까 내가 죽은 첫째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씻지도 않았고 수의도 안 입은 상태였다. 평상복 차림에 낡고 불룩한 솜외투를 걸친 채 빈의관으로 가고 있다니. 갑자기 나 자신의 경솔함이 부끄러워 발길을 되돌렸다. [위화, 『제7일』 13p]
죽은 나는 사실적이다. 죽었다는 것만 잊는다면 살아있는 현현이다. 죽은 것 같은데 죽은 것 같지 않은 모습이다. 그래서 보고 싶지 않지만 볼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놓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죽음을 거론하는, 여기 이 죽음을 보라, 삶 이후의 죽음을. 죽음 이후에 떠나는 삶으로의 7일간 여행을. 기억의 길에서 보내는 7일간의 애도의 시간을. 나를 존재하게 했던 힘, 그 사랑을 찾아 헤매었던 시간을. 그 속에 묻어나는 “소설이 아무리 황당해도 중국 현실을 따라가지는 못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온갖 황당한 이야기들을.
어머니는 열차 침대칸에서 내려와 커다란 배를 흔들며 객차 연결 통로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마침내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배 속의 나 때문에 도저히 쪼그려 앉을 수가 없어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가 바지를 벗은 뒤 힘을 한번 주자 송곳이 주머니를 뚫듯 내가 쑥 빠져나와 화장실 둥근 구멍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달리는 기차가 순식간에 나와 어머니를 이어주던 탯줄을 잘라버렸다. 속도, 그러니까 내가 떨어지고 기차가 나아가는 상반된 속도가 나와 어머니의 연결을 끊어버려 우리는 한순간에 서로를 잃었다. [위화, 『제7일』 93p]
어머니와 나는 순간을 잃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런 선택을 한다.
아버지는 순간 멍해졌다. 얼굴 가득하던 행복한 표정이 순식간에 흐릿하고 슬픈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 표정은 비바람처럼 스쳐지나가지 않고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얼굴에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된 것은 그때 이미 아가씨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사랑했기에, 두 가지 다른 사랑 앞에서 아버지는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버려야 했다. [위화, 『제7일』 104p]
'기차가 낳은 아이' 양페이는 태어나면서 생모와 이별하고 철도 선로 인부였던 아버지에게 극적으로 구출되어 그의 아들로 살아가게 된다. 사고로 버려진 아이를 혈혈단신 총각의 몸으로 키우는 아버지와 그들을 돌봐주는 아버지 친구 부부, 사랑했던 여인과 이웃들의 이야기가 엮여가면서 중국 사회를 뉴스 보도보다 더 사실적이고 날카롭게 그리면서도 휴머니티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작품 전체에 걸쳐 그려냈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유사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과 서로를 증오하는 혈연 가족의 모습, 협잡과 꼼수가 난무하는 현세와 서로를 죽인 원수임에도 매일 토닥토닥 싸우며 아옹다옹하며 살아갈 수 있는 연옥을 대비하며 우리가 정말 살고 싶은 세상,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고 전한다. 
나는 기억의 끝자락에 도달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이후의 광경은 전혀, 눈곱만큼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를 향한 탄자신의 시선과 뒤이은 엄청난 굉음, 그것이 바로 내가 찾아낸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 마지막 순간, 나의 몸과 마음은 온통 리칭이라는 여자의 자살에 쏠려 있었다. 내 아내였던 여자, 내 아름답고 가슴 아픈 기억. 나의 슬픔은 출발도 하기 전에 이미 도착해 하차하고 말았다. [위화, 『제7일』 43p]
‘별에서 온 그대’도 끝이 났다. 지구에서 400년을 산 그가 보내는 메시지는 유한함이다. 세속의 말로 있을 때 잘하라는. 다른 말로 순간을 살라는 너무도 뻔하고 흔한 말. 소설을 읽고 나면 그것이 허구인데도 불구하고 궁극의 다짐이나 교훈은 살아야겠다, 잘 살아야겠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초등학생용 멘트이다. 여섯째 날 장을 읽을 때쯤까지도 미려한 소망을 갖고 있었다. 왔던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시간여행은 별과 지구 사이에서나 있는 일일 터. 

<o:p></o:p>2014. 2. 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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