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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그들에게 린디합을 / 손보미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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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댓글 0건 조회 7,270회 작성일 13-12-0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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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o:p></o:p>눈이, 첫눈이 내렸다. 짧고 강렬하게.강아지처럼 뛰쳐나갈 수가 없어서 창문만 열었다 닫았다 했다.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왜 겨울옷을 안 입느냐고, 이해가 안 간다고, 아무튼 독특하다는 말에 나는 아직 겨울이 아닌 걸로, 님이 아니라 가을을 아직 보내지 아니한 걸로 치기에도 좀 민망하지만 11월까지는 가을이다. 가을이 너무 짧아서 실종될 지경이 되어버렸다. 늦가을에 다녀온 적상산은 붉은 치맛자락은 없고 잎이 다 떨어진 나무는 황량하고 앙상하여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는데, 재밌는 것은 사진을 찍으면 만추의 빛이 언뜻언뜻 나타났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고 카메라의 순간에만 잡히는 빛깔들.   <o:p></o:p>공간에서 소설읽기도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한 작가의 책을 세 편 정도 정해서 읽을 경우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섞어서 읽게 된다. 대체적으로 참여자들은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장편이 무난하다. 한 권의 책을 읽기에 짧은 단편 모음이 빨리 읽을 것 같은데도 실상 읽어보면 속도를 내기에는 장편이 수월하다. 문득 이런 문장이 떠오른다. 짧고 굵게? 아니면 가늘고 길게? 삶의 속도가 느리고 더딘 나로서는, 단편의 짧음 안에서 말해지지 않는 것들, 생의 한 단면에서 나타나는 비의 같은 것들을 보면서 짧고 가늘게, 가늘고 느리게 이 계절을 보내고 싶다. 카메라의 순간처럼.   <o:p></o:p>소개할 소설집은 손보미의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다. 요즘은 작가 앞에 ‘젊은’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말하곤 한다. 작가도 나이를 먹어 가는데 그들의 ‘젊은’은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말하는 걸까 하다가도 이런 작가를 만나면 젊다는 느낌이 확연히 든다. 그것은 풋풋함보다는 새로움이거나 독특함이거나 당참이거나 산뜻함이거나 세련됨이거나 등등으로 다가온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 수상,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 당선, 2012년 '폭우'로 제3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 2013년 '과학자의 사랑'으로 제4회 젊은작가상 수상 등 등단 사 년차에 불과한 이 신인 소설가를 그들의 세계에서도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의 첫 소설집은 온통 수상작이 대부분이다. 황정은의 신간『야만적인 앨리스씨』를 소개하는 글에서 적합한 수식어를 찾기 어려워 그저 '황정은풍'이라고만 이야기될 수 있을 뿐이라고 한 것처럼 손보미의 첫 소설집 또한 분명 ‘손보미식’의 개성적인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했다. 그래서 젊은 작가들이 좋다.   <o:p></o:p>『그들에게 린디합을』은 「담요」로 시작하여 「애드벌룬」으로 끝이 난다. 싱싱하면서도 무르익은 아홉 편(담요. 폭우. 침묵. 그들에게 린디합을. 여자들의 세상. 육 인용 식탁. 과학자의 사랑. 달콤한 잠 ― 팽 이야기. 애드벌룬)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각기 독립적인 세계를 이루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아홉 편의 이야기이다. 단편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가장 처음 떠오르는 문장은 ‘이런 소설 처음이야.’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런 서사 방식 처음이야.’ ‘이건 뭐지?’ 나에게 손보미의 단편은 기묘함으로 왔다. 이 이질감이 주는 자연스러움은 뭐지?   <o:p></o:p>성일정씨의 「서사의 가장 마지막 기원」을 다시 한 번 인용하고 싶다. “이를테면 사람이 아무도 없는 텅 빈 댄스홀을 롱테이크로 오 분이나 보여줄 때,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심지어 음악조차도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제야 비로소 화면 속에서 무엇인가를 본다. 그건 길감독이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던 일종의 감정의 간격이다. 그는 오 년에 걸쳐 댄스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지만, 나는 그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댄스에 관한 것이 아니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렇다면 그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다시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고, 남녀가 댄스홀로 들어온다. 잠시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여자가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무언가를 말한다. 다시 여자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그들이 춤을 막 시작하려는 순간, 영화는 끝난다. 여자는 남자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바로 그것이, 그러니까 바로 이 십 분 남짓한 부분이 이 영화의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중에서 길감독의 말하고자 했던 진짜 이야기다. 좀더 적나라하게 말한다면 이 영화의 전체 러닝타임 백오십 분 중 백사십 분은 단지 마지막 십 분을(그리고 어쩌면 <그들에게 린디합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단계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손보미, 『그들에게 린디합을』‘그들에게 린디합을’ 107-108p]   <o:p></o:p>단편의 간격은 시의 농축과 장편의 활개와 다르면서도 그 모두를 포함한 필요충분조건의 영역으로 느껴진다. 손보미의 간격은 응축된 현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거나 듬성듬성 웅덩이를 파놓기도 하면서 한 번씩 칼을 휘두른다. 형식은 헐거운 듯 포장되어 마음을 놓고 휙휙휙 읽다보면 어느 순간 스산함에 맞닥뜨리게 된다. 건너뛴 서사, 나는 무엇을 읽었을까. 베인지도 모르게 베인 칼자국처럼. 그래서 자각은 단편이 끝났을 때 찾아온다. 새로움이다. 당혹감이다. 그 마지막 십분은 현실과 기억 그 저편의 것이 아닐까. 건너뛴 서사가 주는 자각, 구병모가 남겨놓은 여백의 칼 옆자리에 놓고 싶다.   <o:p></o:p>2013. 11. 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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