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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의 책소개]파과 / 구병모 /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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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댓글 0건 조회 7,048회 작성일 13-10-0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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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o:p></o:p>사과가 떨어진다. 질량을 가지고 있는 모든 물체는 다른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법칙 아니어도 사과는 떨어질 것만 같다. 가을이니까, 바람이 부니까, 달이 차고 몸이 기우니까, 불완전한 지구가 저 혼자 돌고 있으니까, 태양이 빛나거나 불을 품고 있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있거나 시간이 지나가고 있으니까, 과일이 상하거나(破果) 이팔청춘 좋은 시절이거나(破瓜) 소설 『파과』를 덮고도 그 여운은 오래가니까. 서늘할 만치 칼에 베인 듯한 단편을 읽은 느낌이다. 돌이킬 수 없다고 확인되는 순간, 이미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깨닫는 순간, 복구가 불가능한 순간들에 부닥친다. 스르륵 다 읽고 남은 긴 여백이 좋다.   <o:p></o:p>간만에 만난 지인이 묻는다. 지금도 소설읽기 해요? 어, 하지. 한다. 꾸준히 라기보다는 여전히에 가깝게. 회원들과 함께 소설을 읽고 있으면서도 앞으로 읽고 싶은 작가 이름은 열심히 적어놓고 그들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인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했던 작가, 구병모의 신작이 나왔다. 아름다운 제목으로. 제목을 봤을 때 영화 ‘파주’가 아무 상관없이 떠올랐지만 한자어가 붙지 않은 제목 ‘파과’는 묘한 기운이 전해왔다. 독자들은 ‘과’자의 한자어에 관심을 보였지만, 뭐 그것은 작가가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은 센스일 테고 나에게는 ‘파’자의 어감과 느낌이 전해왔다. 깨뜨리고, 무너지고, 부수고, 파괴하고, 째고, 가르고, 지우고, 패배시키고, 일을 망치고, 쪼개지고, 갈라지고, 흩뜨리고, 남김이 없이 다하고, 깨지고, 깨고……   <o:p></o:p>여기 여자가 나온다. 쪼개진 손톱, 조각(爪角)은 그녀의 이름이다. 그녀의 나이는 65세, 노인이다. 그런데 그녀의 직업이 심상치 않다. 킬러다. 같은 시기에 출판한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도 심상치 않다. 거기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남자 노인 연쇄살인자다. 김영하의 말을 빌리면 연쇄살인범으로 여자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조각은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여자다. 언젠가는 물커질 과일처럼 늙어갈 육체, 예전과 같지 않아, 마흔을 넘은 지인들이 속출하면서 자주 듣는 말, 끝없이 약자일 것만 같은 늙은 여자, 그러고 싶지 않은 무형의 마음, 그런데 그녀의 직업은 살인청부업이다. 조금만 솔직해지자면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상실과 고독의 대가로 얻은 쾌감을 느꼈다. 마치 이 사회에 정정당당하게 칼을 휘두르며 자신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직업인의 윤리를 여실히 증명하듯 말이다. 그녀는 킬러다.   <o:p></o:p>“대부분의 방역은 이런 식이다. 누가 왜 이것을 원하는지 묻지 않는다. 누가 왜 누군가의 안에서 구제(驅除)해야 할 해충이나 소탕해야 할 쥐새끼가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또는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된 데에 대해 카프카적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의뢰인이 고위직이나 요인일수록, 방역 대상도 마찬가지로 사회적 입장을 가진 자일수록 ‘왜’는 언제나 누락된 채 업자에게 전달된다. 그의 죽음으로써 누가 무슨 이득을 취하는지, 그의 죽음이 창출하는 이윤을 방역업자는 계산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의 죽음과 함께 요동치는 주가라든가 사회 경제 문화의 크고 작은 변화를 목격하면서 비로소 의뢰인이 어떤 부류의 사람이고 무슨 이유로 그런 의뢰를 했는지 역추적으로 짐작하며 대부분의 음모론이 그 과정에서 비롯하지만, 그조차도 까마귀 날고 배 떨어지지 않았단 법도 없으니 짐작 이상의 촉을 가동하지 않는다. 오랜 옛날 그의 아버지에게 일어난 일도 그랬다. [구병모, 『아가미』 119p]   <o:p></o:p>구병모 작가는 2008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등단작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남성적인 이름을 갖고 싶어서 필명을 지었다는 작가는 일단 남자라는 선입견을 가진 상태에서 작품을 보면 의외로 여성적이라서 놀라고, 이름이 실명이 아니라 필명이란 사실에 또 한 번 놀라게 만들고 싶었다고, 일종의 전략으로 이해해 달라는데 나에게 구병모라는 이름은 여자작가 구경미와 헷갈리면서 남자작가인가 싶어 노상 그물에서 쑥쑥 빠져나갔는데 필명보다는 앳된 작가의 사진과 슬픔이 전해오는『아가미』의 표지에 혹해 읽게 되었다. 그것에 비하면 역시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정유정은 전작 『7년의 밤』에 이어 신간 『28』에서도 거침없는 남성적인 필력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밀어붙이는 필력은 한 문장 읽고 생각하고, 한 문장 읽고 생각하면서 읽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호흡곤란과 함께 두통을 야기한다. 그곳에서 찾지 못한 여백을 구병모의 『파과』에서 찾은 느낌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몰입이다. 정유정의 치밀하고 압도적인 서사, 숨 쉴 틈 없이 달려가는 문장에 비하면 구병모의 문장은 길고 느린 호흡이면서 집중력을 끌고 나간다. 장문과 복문을 구성하면서 천천히 인물의 심리를 적확하게 표현한다. 그러면서 깊숙이 들어갔다가 순간 확 치고 나가는 식이다. 배수아의 만연체를 떠올린다. 칼이 어디 있었는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살인이 일어난다. 다음 문장을 읽고서야 살인한 거야? 이렇게 빨리?   <o:p></o:p>자, 이 프로페셔널한 할머니 킬러가 어떻게 살인을 저지르는가, 그것이 아니라 지난 40년 동안 수많은 표적을 단숨에 처리하며 어느덧 업계의 대모의 위치에 이르렀는데, 무정하고 냉혹하게 스스로를 단련해온 지난 세월 동안 그녀는 삶의 희로애락에 무감각했으며, 여성으로서의 행복 역시 남의 이야기로 치부하며, 그렇게 철저한 단절과 고독으로 유지되던 황량한 삶에 어느 순간 변화가 찾아왔고, 환갑을 넘긴 나이인 만큼 기억력이 떨어지고 몸이 삐걱거리는 건 예삿일인데, 느닷없이 ‘타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인데, 그 이야기를 계속 하자니 이 글이 끝날 것 같지 않다. 다만 이 킬러의 마지막 결투를 응원할 뿐이다.                         <img width="469" align="center" src="http://www.yonggamhan.org/liguard_bbs/aribbs/data_file/li_etc_6_201309-book-pagua.jpg">   <o:p></o:p>   소설을 시작하기 전, 작가의 글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o:p></o:p>떨어뜨림에 익숙해지면으깨진 과일에 더 이상 미련은 없다- 서효인, 「저글링」에서   <o:p></o:p>그녀의 삶은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시작될까. 아니 어떻게 될까. 나의 글은 야속하게도 용두사미가 되었다.   <o:p></o:p>2013. 9. 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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